결핵 환자 10명 중 4∼5명 '치료비 외 비용'에 허리 휜다

의료비보다 영양 보충·소득 상실 부담 커…저소득층 특히 취약
고려대 산학협력단 연구보고서…결핵 환자 '재난적 비용' 실태 첫 확인

 국내 결핵 환자 10명 중 4∼5명꼴로 질환이 가계에 큰 경제적 부담을 주는 '재난적 비용'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지원으로 의료비 자체는 부담이 적었지만, 영양 보충을 위한 식품 구매 등 '직접 비(非)의료 비용'과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이 재난적 비용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재난적 비용이란 특정 질환으로 인해 지출하는 비용이 가구 연간 소득의 20%를 초과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이는 전 세계 평균(47∼54.9%)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의료비 본인 부담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결과다.

 연구팀은 국내 결핵 환자가 실제 부담하는 비용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재난적 비용 발생률과 그 원인을 규명하고자 약제 감수성 결핵 환자 133명과 다제내성/리팜핀 내성 결핵 환자 17명을 포함해 총 150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 면접을 진행했다.

 이번 연구는 최초의 전국 단위 조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 결과에서 드러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재난적 비용의 세부 내용이다.

 총비용 중 실제 병원 진료나 약값 등 '직접 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약제 감수성 환자군에서 10.2%, 내성 환자군에서 9.0%에 불과했다.

 반면, 영양 보충을 위한 식품 구매, 교통비, 간병비 등 '직접 비의료 비용'이 각각 58.8%와 69.0%를 차지했으며, 질병으로 인한 실직이나 근로 시간 단축에 따른 '소득 상실(간접 비용)'도 각각 31.0%와 22.0%에 달했다.

 특히, 영양 보충 비용이 약제 감수성 환자군에서 36.3%, 내성 환자군에서 53.8%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해 환자들이 치료 과정에서 좋은 영양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경제적 부담을 지고 있음이 드러났다.

 소득 수준이 낮을수록 재난적 비용 발생률은 급격히 높아졌다. 월 가구소득 200만원 미만인 최저 소득 구간에서는 무려 78.9%의 환자가 재난적 비용에 직면했지만, 800만원 이상 최고 소득 구간에서는 5.0%에 그쳐 극명한 대조를 보였다.

 ◇ "치료는 공짜라지만"…현장에서 터져 나온 목소리

 심층 면접에 참여한 환자들은 수치 뒤에 숨겨진 고통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결핵 확진까지 여러 병원을 전전하며 진단이 늦어지는 경험, 잦은 재발과 내성으로 인한 기나긴 투병 생활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 30대 여성 다제내성결핵 환자는 "산정 특례 덕분에 약값 걱정은 덜었지만, 병원까지 왕복 차비, 식비도 만만치 않고, 체력 보충을 위해 좋은 음식을 챙겨 먹는 데 돈이 많이 든다"고 말했다.

 산정특례제도는 진료비 부담이 큰 중증질환(암, 희귀질환, 결핵 등) 환자의 의료비 본인부담률을 대폭 낮춰주는 건강보험 혜택을 말한다.

 또 다른 60대 남성 환자는 "결핵 진단 후에 하던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고, 아내가 병간호하느라 경제활동을 못 하게 되니 생활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처럼 정부의 산정특례제도로 결핵 치료비 본인 부담은 0%에 가깝지만, ▲ 비급여 항목 ▲ 상급 병실료 ▲ 병원 방문을 위한 교통비 및 숙박비 ▲ 영양 보충 식품 구입비 ▲ 간병비 ▲ 소득 상실 등 '숨겨진 비용'이 환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짓누르고 있었다. 환자들은 실직, 학업 중단, 사회적 고립감 등 경제적 문제 외에도 극심한 심리적 고통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의료비 지원 넘어선 포괄적 대책 필요"

 연구진은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몇 가지 정책 제언을 내놓았다.

 첫째, 결핵 환자 재난적 비용 조사를 정례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정책 개발 연구를 지속해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기초 자료로서 의미가 있지만, 전국 결핵 환자를 완전히 대표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둘째, '결핵 민감형(TB-sensitive) 사회보호제도'로서 유급병가와 상병수당 제도의 조속한 도입을 촉구했다. 아파서 일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소득을 보전해주는 이들 제도는 결핵 환자의 큰 부담 중 하나인 소득 상실 문제를 완화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기존의 '결핵 특화형(TB-specific) 사회 보호 사업'의 지원 대상과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 시행 중인 취약계층 결핵환자 지원사업이나 입원 명령 환자 부양가족 생활 보호비 지원 등이 있지만, 가장 취약한 저소득층 환자 대다수가 여전히 재난적 비용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제도의 실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관계 부처와 협의해 결핵 환자 지원 정책을 보완하고, 세계보건기구(WHO)의 '결핵 퇴치 전략(END TB Strategy)' 목표 달성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결핵은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이라는 세균에 의해 발생하는 만성 감염병이다. 주로 폐에 감염을 일으키지만(폐결핵), 신장, 신경, 뼈 등 신체 여러 부위에도 발생할 수 있다. 전염성 결핵 환자의 기침이나 재채기 시 공기 중으로 배출된 균을 통해 전파된다.

 국내 결핵 발생률은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이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결핵 환자 수는 1만7천944명(인구 10만명당 35.2명)으로, 2023년(1만9천540명, 인구 10만명당 38.2명) 대비 8.2% 줄어 13년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는 발생률이 높은 편이며, 특히 65세 이상 고령층 환자 비중이 증가하는 양상이다. 잠복 결핵 감염자(결핵균에 감염됐으나 발병하지 않은 상태)도 상당수 존재해 지속적인 국가적 관리와 예방 노력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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