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탕국·갑비차…한국인의 커피 사랑 165년

"1860년 프랑스 선교사가 들여와"…세계 최초 믹스커피 개발
스타벅스 매장 미·중 이어 세계 3위…국내 커피브랜드 886개

  미국, 중국에 이어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나라.

 '커피 공화국' 한국이 최근 일본을 제치고 국가별 스타벅스 매장 수 3위에 올랐다.

 4일 스타벅스 글로벌 웹사이트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국내 스타벅스 매장 수는 2천9개로, 인구가 2.4배 많은 일본을 18개 차이로 앞섰다.

 한국인의 커피 사랑은 가히 유별나다고 할 수 있다.

 ◇ 1860년 3월 커피 18㎏ 해외서 들여와

 커피 전래에 관한 국내 최초의 기록은 약 165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길상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2021년 발표한 논문 '우리나라 커피 역사의 기원 고찰'에 따르면 국내 최초의 '커피 수입'은 1860년 3월에 있었다.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베르뇌 주교가 조선에 머물며 홍콩 대표부에 커피를 보내달라고 서신을 보낸 것이다.

 당시 베르뇌 주교는 커피, 흑설탕, 코냑과 함께 '커피 40리브르'를 보내달라고 요청했으며, 주문한 물품은 이듬해 4월 조선으로 들어온 다른 선교사 편으로 전달됐다.

 40리브르를 환산하면 약 18.14㎏ 수준이다.

 이후에도 베르뇌 주교는 1861년 9월, 1863년 11월, 1865년 12월 재차 커피를 보내달라는 서신을 보냈다.

 이 교수는 "유입된 커피는 적지 않은 양"이라며 "조선인 중 주교의 권유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적지 않게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충분히 설득력 있다"고 설명했다.

 개항 이후 서양 문물이 본격 유입되면서 커피는 조선 상류층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커피를 음차한 국내 표기어도 이즈음 나타났다. 1884년 문관 민건호는 자신의 일기 '해은일록'에서 커피를 '갑비차'로, 같은 해 한성순보에선 커피를 '가비'라고 썼다.

 서민들은 맛과 색깔이 탕약과 비슷해 '양탕(洋湯)국'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조미수호통상사절단으로 유학을 다녀온 유길준은 1895년 펴낸 '서유견문'에서 "서양인들은 커피를 숭늉처럼 마신다"고 써 조선인들의 식후 숭늉 문화와 서양인들의 식후 커피 문화의 유사성을 짚었다.

 ◇ 고종의 커피 사랑, 독살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고종 황제는 유명한 커피(가배) 애호가였다.

 아관파천(俄館播遷·1896∼1897) 당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며 커피를 처음 접한 후 즐겨 마셨다.

 고종의 '커피 사랑'은 독살 위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898년 역관 김홍륙이 자신에게 유배형을 내린 고종에게 앙심을 품어 궁중요리사를 매수해 고종의 커피에 아편을 타 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맛이 이상하다고 느낀 고종은 한두 모금만 마셔 화를 면했으나, 황태자(후일 순종)는 꽤 많은 양을 들이켜 이가 빠지는 등 후유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커피를 파는 다방은 문인, 예술가, 독립운동가들이 모여 엄혹한 시국을 논의하는 장소가 됐다.

 한국인이 운영한 최초의 다방 '카카듀'는 서울 종로구에 1927∼1928년 등장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영화배우 복혜숙과 시인 이상도 서울 종로구에 각각 '비너스'와 '제비'라는 이름의 다방을 열어 운영했다.

 ◇ 1976년 동서식품 믹스커피…커피 소비에 혁명

 해방 이후 산업화와 함께 한국인의 커피 소비 패턴을 바꾼 획기적 상품이 등장했다. 바로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믹스커피'다.

 커피, 프림, 설탕을 일정 비율로 섞어 뜨거운 물에 타 먹을 수 있도록 해 다방에서만 먹을 수 있던 커피를 비교적 저렴하게 집, 사무실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전까지는 커피가 비싼 음료라는 인식이 있었다면 믹스커피는 커피를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먹을 수 있게 대중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2000년대 들어 대중화된 커피 중에서도 고급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 취향을 반영하는 커피전문점 브랜드가 생겨나면서 한국의 '커피 전성시대'가 시작됐다.

 19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내놓은 게 신호탄이었다.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커피빈·할리스커피·탐앤탐스 등 다양한 커피 전문점 브랜드가 잇따라 들어서며 시장이 급속히 팽창하기 시작했다.

 박영순 커피비평가협회장(단국대 문화예술대학원 커피학과 외래교수)은 "베르뇌 주교, 고종, 일제시대 지식인 등을 거쳐 대중에게 전해진 만큼 한국인에게 커피는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 내려온 고급 식문화라는 인식이 자리한다"고 짚었다.

 박 회장은 "스타벅스는 그 이후 커피가 한번 더 고급화되는 계기가 됐다"며 "커피가 나의 문화적 수준 및 격조를 드러내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잡게 된 주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 2023년 국내 커피 브랜드 886개…저가형 브랜드 급성장

 커피 시장은 산업화 이후 한국의 바쁜 기업 문화, 높은 접근성, 제품 다양성을 앞세워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높은 업무 집중력을 요구하는 국내 업무 문화로 커피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으며, 편의점과 카페 등 쉽게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된 배경이 작용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따르면 2022년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3조1천717억원으로 2018년(2조5천729억원) 이후 연평균 17.4% 성장했다.

 국내 커피 브랜드 수는 치킨 브랜드 수보다 200개나 많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가맹사업 현황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국내 커피 브랜드 수는 886개로, 2021년(736개)보다 20% 증가했다.

 고물가 속 직장인들의 '커피 수혈'을 담당하는 저가형 커피 브랜드의 성장세도 가파르다.

 3대 저가 커피 브랜드(메가MGC커피·컴포즈커피·빽다방)의 전국 가맹점 수는 2022년 말 5천285개로 2021년(3천849개)보다 37% 증가했다. 하루 4개씩 점포가 늘어난 셈이다.

 박 회장은 "현재는 커피 소비자들이 양극화되는 추세"라며 "커피의 맛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스페셜티 커피 같이 고급 커피 시장을 확대하는 반면 각성 효과를 위해 습관적으로 커피를 소비하는 사람들은 저가 브랜드 커피 시장에 몰렸다"고 설명했다.

 ◇ 디카페인 커피 수요 증가…'한국형 커피' 재해석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지난해 7월 발간한 뉴스레터에 따르면 코로나19 당시 홈카페족이 증가하며 캡슐커피 시장이 호황을 누렸으나, 엔데믹 전환 이후 최근에는 외부에서 손쉽게 즐길 수 있는 인스턴트 커피·조제커피·액상커피의 판매량이 증가하고 있다.

 아울러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설탕·프림 대신 단백질 등을 첨가한 커피 믹스가 출시되고, 디카페인 커피 수요가 높아지고 있으며, 고물가 영향으로 커피값에 대한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용량 페트 커피를 찾는 소비자도 늘고 있다.

 최근에는 젊은 층을 중심으로 커피를 재해석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지난해 서울 성동구에는 50년 전통의 믹스커피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카페가 열렸고, 편의점 커피와 바나나 우유를 조합한 '바나나라떼' 레시피가 유행하는 등 '한국적인 커피'를 창조해내는 문화가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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