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어린이집은 어디로 갔나?'…저출생 후폭풍

전국 출생률 꼴찌 전북지역 어린이집 급감…10년 새 절반 휴·폐업
정원 120명 넘던 법인도 끝내 문 닫아…지자체 출생률 늘리기 안간힘

  '어린이집→유치원→초등학교'로 이어지던 보육 코스가 위협받고 있다.

 출생률이 가파르게 내리막길을 타면서부터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가득했던 어린이집은 이제 존폐위기까지 내몰렸다.

 지난 27일 오전 찾은 전주시 교외의 한 어린이집 앞 도로는 적막감이 감돌 정도로 한산했다.

 아침마다 노란색 통학버스 문이 열리고 까르르 웃는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가던 출입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녹슨 철사로 단단히 동여맨 흰색 울타리 앞에는 채 열어보지 않은 우편물이 한가득 쌓였다.

 커다란 미끄럼틀과 놀이기구가 놓인 놀이터에는 아이들 대신 그만큼 키가 자란 잡초들이 무성했다.

 이 민간 어린이집은 1996년 문을 열었으나 올해 3월부터 기약 없는 '휴지'(休止) 상태에 들어갔다고 한다.

 아이들이 생활했던 시설답게 물품은 여전히 잘 정돈돼 있었지만, 오랜 기간 관리의 손길을 받지 못하고 방치된 듯 보였다.

 심화하는 저출생으로 전북의 어린이집 아동이 급감, 휴·폐업이 잇따르면서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여기서 약 2㎞ 떨어진 전주시 덕진구의 또 다른 법인 어린이집 출입구 앞에도 두꺼운 철제 차단기가 드리웠다.

 벽에는 아이들이 최근 크레파스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그림들이 빼곡했고, 입구에는 정부와 지자체가 인증한 보육 시설이라는 푯말이 붙어 있었다.

 주인 잃은 장난감 말과 인형들이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듯한 이날 회색 하늘처럼 쓸쓸해 보였다.

 이 어린이집은 올해 초 휴업을 결정하기 전까지 정원이 120여명에 달했던 대규모 보육 시설이었다.

 육아카페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심심치 않게 이름이 보였을 정도로 지역에서는 꽤 인지도 있는 어린이집이었다.

 지역 어린이집들은 자고 일어나면 문을 닫는 다른 시설의 상황이 남의 일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전주지역 한 민간 어린이집 원장은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어린이집 원아 수가 딱 절반으로 줄었다"며 "신혼부부들이 많이 사는 신도심 쪽은 형편이 낫겠지만, 구도심에 있는 어린이집은 이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 전북 어린이집 10년 새 절반으로 '뚝'

 저출생 현상으로 인한 지방소멸 경고등은 원아 수 감소로 폐업 위기에 몰린 어린이집에 먼저 깜빡였다.

 전북지역 어린이집 수는 2014년 1천654개소에 달했으나 올해 5월 기준 910개소로 크게 줄었다.

꼬박 10년 만에 어린이집 740개소가 문을 닫거나 다른 업종으로 전환한 것이다.

 현재 시설별 정원 수를 살펴보면 지역 어린이집들이 겪는 어려움을 간접적으로나마 짐작할 수 있다.

 전체 정원은 4만6천79명인데 반해 시설에 다니는 아동은 2만6천646명에 불과해 충족률이 57.8%에 그친다.

 지역마다 사정은 다르지만, 그나마 청년 인구가 많은 전주시를 제외한 나머지 시군은 모두 어린이집 정원의 절반을 겨우 채우는 상황이다.

 주민 고령화와 청년층 이탈이 가파른 진안군은 전체 어린이집 정원 396명 중 143명만 채워 충족률이 36.1%에 그친다.

 전북지역 어린이집의 휴·폐업 확산은 타지역보다도 낮은 출생률에 기인한다.

 전북지역 조출생률(인구 1천명당 출생아 수)은 지난 4월 기준 3.5명에 그친다.

 전국 평균인 4.6명보다도 1.1명이나 적고, 전북과 마찬가지로 인구 감소에 따른 지방소멸 위기를 마주한 경북의 4명에도 크게 못 미친다.

 사실상 전국에서 가장 가파르게 지방소멸이 진행 중인 지역인 것이다.

 여기에 2020∼2023년 최근 4년간 전북 청년 인구(20∼39세) 3만3천319명이 대학 진학이나 일자리를 찾아 지역을 떠난 것을 고려하면 출생률 반등도 기대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정원을 채우지 못한 어린이집을 고령화 시대에 수요가 급등한 노인복지시설로 변경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선미 정읍시의원은 "급격히 낮아진 출생률로 폐원하는 어린이집이 늘어 보육교사의 실업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며 "공동주택 내 유휴 어린이집의 용도변경을 완화해 재가복지시설인 노인주간보호센터로 사용하는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아이 낳기 좋은 전북'…지자체 안간힘

 이처럼 흔들리는 보육 기반이 더는 무너지지 않도록 지자체도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적극적인 지원으로 일단 '아이 낳기 좋은 지역'을 만들어야 깜빡임이 빨라지는 지방소멸 경고등을 끌 수 있다는 걸 인지한 지 오래다.

 전북자치도는 만혼으로 고령의 산모와 난임부부가 늘어나는 추세에 대응해 임신 전 주기에 걸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도는 지원 단계를 임신 준비와 임신, 출산·산후 등으로 구분하고 2025∼2027년 연차별 추진사업을 최근 발표했다.

 먼저 임신 준비 단계에서는 난임 부부 상담센터, 치유의 숲 운영, 영구 피임복원 시술 비용 등을 지원한다.

 또 임신 단계에서는 고위험 임산부 건강관리, 가정 태교 지원, 풍진 검사·접종비 지원 사업을 추진한다.

 마지막으로 출산·산후 단계에서는 민간 산후조리원을 공공시설로 지정하고 취약계층에 산후조리 비용을 지원한다.

 여기에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기저귀·조제분유를 제공하는 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다.

 도는 특히 '모아(母兒) 건강복합센터'를 건립해 임신과 출산, 보육 등 단계별 종합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도내 인구감소 감소·관심 지역으로 분류된 정읍시와 임실군, 무주군, 고창군 등 11개 시군도 출생률 감소 등 인구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다.

 지난달 처음으로 '지방소멸 대응을 위한 인구 활력 추진단' 회의를 열어 행정안전부의 지방소멸 기금 활용과 청년 인구 유출을 막기 위한 방안을 논의했다.

 도는 이번 회의를 시작으로 각 지자체 의견을 반영해 맞춤형 인구 정책을 수립할 계획이다.

 최병관 도 행정부지사는 "급격한 인구 감소는 지역의 존폐가 걸린 중대한 사안"이라며 "지방소멸 에 대응하기 위해 기금을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시군과 적극적으로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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