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가 무너질뻔한 순간, '전문간호사' 역할 빛났다"

"전문간호사 없이 병동 운영 힘들어…역할 걸맞은 법적·보상체계 마련해야"

 지난 1년여간 한국 의료는 크게 흔들렸다.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 방침 이후 의정 갈등이 격화되고 전공의 이탈이 이어지면서, 필수의료와 지역의료의 붕괴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지금까지 환자들에게 큰 버팀목이 된 건 다름 아닌 병원의 간호사들이었다,

 간호사들은 병원 곳곳에서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웠다. 중환자실에서 환자의 생명선처럼 흔들리는 모니터 알람을 가장 먼저 잡아냈고, 응급실에선 시술과 처치를 동시에 조율하며 혼돈을 수습했다.

 또 항암 병동에서 매일 바뀌는 환자 상태를 읽어 투약과 검사 일정을 새로 짜고, 보호자의 마음을 다독여준 사람도 간호사였다.

 최근 병원간호사회와 한국의학바이오기자협회가 개최한 '간호의 현재와 미래' 심포지엄(변화하는 보건의료 환경 속 전문성의 재정립)은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다뤘다.

 위기 속에서 드러난 간호사의 실질적 역할을 재평가하고, 이를 제도화하기 위한 해법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홍정희 병원간호사회 회장은 "위기 때 환자를 지켜온 간호사의 전문성은 이미 증명됐다"며 "그런데도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는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이라도 간호 현장의 업무 구조와 책임, 전문성에 걸맞은 법적 기반 및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수정 한국전문간호사협회 회장(성균관대 임상간호대학 교수)은 현재 한국의 의료 환경을 '격변'으로 규정하며, 환자를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전문 인력으로 전문간호사를 꼽았다.

 전문간호사는 의료법 제78조에 따라 보건·마취·정신·노인·중환자·종양 등 13개 분야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인정하는 국가 자격을 갖춘 전문직이다.

 그는 "지난 1년 동안 전공의 집단 이탈과 의정 갈등 속에서도 중환자실, 응급실, 항암 병동 등에서 의료 공백을 막은 것은 전문간호사와 간호사였다"면서 "이중 전문간호사는 단순히 의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넘어 중증 환자 평가, 시술 보조, 경과 기록 작성, 검사 조정, 환자·가족 상담, 다학제 협력 지원 등 고난도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회장은 특히 "이제는 전문간호사가 빠지면 병동 운영이 어렵고, 투입되면 환자 안전이 회복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면서 전문간호사 확대를 주장했다.

 그는 "싱가포르와 대만에서는 전문간호사 체계를 국가 차원에서 정교하게 운영해 환자 안전과 의료 서비스 품질을 제도적으로 확보하고 있다"면서 "한국에서도 이제 전문간호사는 단순 선택이 아닌, 의료 지속 가능성을 결정짓는 핵심 자산이 된 만큼 팀 기반 진료 체계의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연희 분당서울대병원 간호본부장도 전문간호사가 상급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신 본부장은 "간호사가 진료 지원 업무와 고유의 간호 업무를 모두 수행하는 현실을 반영, 업무 범위를 명확히 법제화하고, 전문성 중심의 역할 분류와 보상체계를 구축해야 한다"면서 "이 중에서도 진료 지원 전담간호사의 역할별 교육 강화, 상급 업무 수행이 가능한 전문간호사 양성체계 정비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홍석경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의학과 교수와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 역시 "중환자 치료는 초기 대응부터 장기 돌봄까지 간호사 없이는 불가능하다"거나 "지난 1년 7개월 동안 전공의가 없어도 환자 진료가 유지된 것은 간호사 덕분"이라는 말로 간호사의 역할에 공감을 표했다.

 다만 이처럼 간호사의 위상과 역할이 커지고 있지만, 중소 병원과 지역 병원의 높은 이직률과 미흡한 처우 등은 개선 과제로 지목됐다.

 문현주 성애병원 간호부장은 "중소병원은 신규·경력 간호사가 3차 병원으로 빠져나가면서 인력 풀이 붕괴해 남아 있는 간호사가 과중한 업무를 떠안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갈등·번아웃·이직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개선하기 위한 상급기관 차원의 간호사 교육 등 지원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간호사 역할 확대를 위해서는 법적·제도적 보상체계를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장석용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의사 중심의 이원화된 의료체계 속에서 의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서는 간호사의 역할 확대가 필수"라면서도 "이를 위해서는 간호사가 주도적으로 교육·실습의 표준화, 의학적 판단 교육 강화, 전문간호사 제도 정비, 근거 기반 정책 제안 등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진료지원(PA) 간호사의 업무를 피부 봉합이나 매듭, 피하조직 절개, 골수 채취 등으로 넓히는 '간호사 진료지원업무 수행에 관한 규칙' 제정안을 입법예고하고 의견을 수렴 중이다. 이 규칙에는 PA 간호사의 업무 범위에 관한 세부적인 기준과 내용 등이 담겼다.

 하태길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정부는 간호 현장의 처우와 업무 부담을 개선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이라며 "병원 현장과 당사자의 의견을 먼저 고려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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